Story

고등학교 시절에는 만화가의 꿈을 키웠으며, 과감히 대학 진학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대학을 포기하자 인문계 고등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잘 수 있었고, 야자 시간에는 만화 학원에 다닐 수 있었다. 잠깐 문하생 생활도 했었는데 일주일 내내 펜선과 말풍선만 수천개씩 그리며 회의감에 빠지기도 했었다.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만화가의 꿈은 접었고, 1년 뒤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채 수능을 보고, 적당한 과를 골라 대학교에 입학했다. 비록 만화가의 꿈은 접었지만, 만화는 현재의 나를 만드는데 있어 꽤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바로 만화를 그리던 시절 만들었던 웹사이트 때문이다. 당시 그림을 그리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신만의 홈페이지를 갖는 것이 일종의 룰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자신의 그림을 전시하고, 비슷한 취미 혹은 꿈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는데 있어 홈페이지만큼 좋은게 없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를 위해 처음으로 독학을 하며 나모 웹에디터로 홈페이지를 만들었는데, 이 과정이 꽤나 재미있었고, 그렇게 만든 홈페이지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막상 만들고 보니 욕심이 생겨 몇차례 리뉴얼을 하기도 했고, 다른 사람의 홈페이지를 대신 만들어 주기도 했다.

재수 아닌 재수를 하고 받아낸 수능 성적은 당연하게도 형편없었지만, 그럼에도 들어갈 수 있는 대학은 있었고, 과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림을 그렸었고, 홈페이지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내게는 멀티미디어 디자인과가 최선의 선택이라 여겨졌다. 그렇게 들어간 대학 생활은 그다지 재밌지 않았다. 일단 고등학교 시절 내내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았던지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도무지 공부에 흥미가 없었고, 그나마 흥미가 있었던 웹사이트 분야는 비중도 적거니와 대부분 독학을 통해 알고 있던 내용이라 지루할 뿐이었다. 그나마 1학기 때는 하는 시늉이라도 했는데, 2학기에 자취를 하게 되면서 매일같이 대학교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다음날 지각하거나 결석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그러다 군대에 입대. 제대 후 정신 좀 차리고 공부를 하려 마음 먹었지만, 군대에 있는 동안 과가 영상 제작 쪽으로 완전히 방향이 바뀌어 있었고(이름도 바뀌었다), 영상쪽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복학을 포기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 몇년은 쇼핑몰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는데, 디자인이 적성에 맞는지 즐겁게 일할 수 있었지만 그만큼 욕심도 생겼다. 지금도 마찬가지인지는 모르겠으나 당시 디자인 업계에서는 쇼핑몰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들을 디자이너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다. 포토샵 작업자지 디자이너는 아니라는 그런 인식이 있었고, 나 역시 어느 정도는 동의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쇼핑몰에서 일함에 있어 가장 부정적이었던 부분은 발전이 없다는 거였다. 매일 같은 사이트의 비슷비슷한 작업의 반복이었기 때문이고, 대부분의 쇼핑몰이 소규모였기에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근로 환경이나 대우가 좋아질 가능성도 작아 보였다. 그래, 기왕 할 거 배우는 셈 치고 웹에이전시에서 일해보자 이런 생각이 나를 사로 잡고 말았다.

웹에이전시에서의 생활은 만족스러웠고, 순조로웠다. 벤치마킹을 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시안을 만들어 보는 일이 재밌었다. 다만, 유지보수 작업은 정말 끔찍했다. 당시 일하던 회사는 거의 모든 사이트를 플래시로 제작하고 있었는데, 컨텐츠를 추가하거나 편집하는 작업 역시 플래시를 통해서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방식이 문제였다. 모든 플래시 파일을 하나 하나 열어서 이미지나 텍스트를 하나 하나 바꿔줘야 했기에 너무 많은 시간을 소모했고, 실수 또한 잦았다. 그러다 외주로 제작한 플래시 사이트를 수정할 일이 있었는데, 유지보수 방식이 기존에 우리가 사용하던 방식과는 달리 꽤나 편리함을 알 수 있었다. 미리 설정된 형식에 맞춰 xml로 이미지 경로와 내용들을 입력하면 플래시 파일을 수정하지 않고도 반영되는 방식이었다. 이런 방법이 있는데 왜 우리는 미련하게 일하고 있었지?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도대체 무슨 차이일까 궁금했고, 답은 액션스크립트였다.

회사에 액션스크립트를 공부하겠노라 선언하고 AS3.0을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회사 사람들은 나의 선언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지만, 3개월 가량 성실하게 회사와 학원을 오가며 공부를 마쳤고, 바로 실전에 도입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만 이번에는 선언하지 않고 비밀리에 진행했다. 혹시라도 실패하면 창피하니까. 약 한달간 기존 회사에서 제작 및 관리하던 플래시 사이트들을 모두 AS3.0 방식으로 변경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 때 이 프로젝트의 이름을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Revolution Project라고 명명했던 것이 아직도 생생하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회사 동료들은 이전보다 편해진 작업 방식에 만족감을 표했고,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인터랙션이나 모션도 내 손을 거치면 가능하게 되었다. 그 해 첫 연봉 협상 역시 대성공이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다시 한번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한국에 아이폰이 상륙한 것이다.

아이폰이 출시되자 많은 것들이 빠르게 바뀌었다. 핸드폰으로 웹사이트를 보는 일이 가능해졌고(많아졌고), 아이폰은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았기에 자연스레 플래시 사이트들의 위상이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HTML과 Javascript에 대한 비중과 요구가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었다. 마침내 회사에서도 플래시가 아닌 다른 방식의 사이트를 제작해야 되는 상황에 이르렀는데, 이 시련은 곧 내게 주어졌다. 홈페이지 만들어본 적 있다며? 액션스크립트 잘 하잖아, 자바스크립트도 스크립트니까 너가 잘 할 거 같은데? 이게 이유였다.

사실이었다. 나는 잘했다. 서포트해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서, 그것도 준비 없이 실무에 바로 적용해야 된다는 점은 큰 부담이었으나, 잘 해냈다. 플래시에서 구현했던 기능을 Javascript로 새로 구현했고, 그렇게 하나씩 플래시를 HTML, CSS, Javascript로 대체해 나갔다. 그래서일까 회사는 나 하나로 충분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자연스레 디자인과는 멀어졌지만, 다행이었던 것은 이 또한 적성에 맞았다는 거다. 아니, 오히려 디자인 보다 더 재밌었고, 성취감 역시 컸다. 아마 회사에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건 내가 유일하다는 일종의 희소성이 주는 만족감이 컸던 것 같다. 이 때 패션 브랜드 SYSTEM의 모바일 웹사이트를 혼자 만들기도 했다. 말그대로 혼자. 디자인도 내가 했다. 원래 디자인은 다른 디자이너가 해줄 것으로 생각했으나, 이 디자이너가 워낙에 믿을만한 사람이 못되서(출근 자체를 거의 안했다), 어떻게 하다보니 디자인도 내가 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모바일 전용 웹사이트를 만들었고, 디자인도 내가 했다는 점이 주는 성취감은 좋았으나, 나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것도 이 때문이다. 나는 디자이너인가? 퍼블리셔인가?

처음에는 둘 다 할 줄 안다는 것이 내 강점이자 내가 가진 무기라고 여겼고, 이 점을 내세우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하지만 조금 구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제가 84년생인데 빠른 84라 83년생이랑 친구예요. 하지만 요즘 빠른년생은 없다고 하니까 그냥 84라고 해야죠, 뭐. 근데 또 제가 음력으로는 12월생이라 돼지띠라…” 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처음엔 “디자인도 할 줄 알지만 퍼블리싱도 잘 해요(feat. 백엔드는 못해요).” 라는 식으로 구구절절 말해보기도 했지만, 그동안 거쳐갔던 많은 회사들과 클라이언트들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디자이너예요? 퍼블리셔예요?” 라고 반문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계속해서 생각하고 고민했다. 나는 디자이너인가? 퍼블리셔인가? 둘 다 할줄 알지만, 할줄 아는 것과 ‘잘’ 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그렇다면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결론은 퍼블리싱이었다(개인적으로 내게는 퍼블리셔라는 호칭 보다는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더 좋고 맞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전히 디자인에 대한 애정과 관심, 선망은 크지만, 더 잘 할 수 있고 더 적성에 맞고 더 욕심이 있는 것은 개발쪽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는 개인적인 공간이기에 그냥 구구절절하게 써볼까 한다(어째 결론이 좀 이상한 것 같지만).

Skills

  • HTML
  • CSS(SASS)
  • Javascript(jQuery)
  • Photoshop
  • Illustration
  • Drawing
  • Flash
  • AS3.0
  • WordPress
  • PHP
  • MySql
  • Electron?
  • Vue.js?

“안녕하세요, 84년생이지만 83년생과 친구고 띠도 돼지띠인, 하지만 나이가 적잖게 먹은 요즘은 그냥 84년생이라 말하고 싶은, 디자이너였지만 현재는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그렇지만 포토샵과 일러스트도 곧잘 다루고 나름 디자인 감각도 있는, 한때 플래시와 AS 3.0도 곧잘 다뤘지만 지금은 다 까먹은, 백엔드 쪽은 잘모르지만 PHP와 MySql도 조금 다룰줄 아는, 워드프레스를 잘 다루는 김철중입니다. 반갑습니다.”